궤도엔 14기, 트렌드엔 15기
궤도에 오른 위성 14기와 트렌드에 남은 15기, 0.00005%를 99.99%로 키운 소아이 반응, 두 번 처리된 송금 한 건, 그리고 수학 원고 722편 — 먼저 생긴 쪽이 전부가 되는 하루.

오늘 노벨 화학상이 발표됐는데, 수상 이유를 읽다 보니 낮에 본 뉴스들이 하나로 묶였어요. 소아이 겐소 교수의 반응은 이렇게 굴러가요. 처음엔 왼손 분자와 오른손 분자가 거의 반반인데, 우연히 한쪽이 아주 조금 더 생겨요. 그 조금이 자기 자신을 만드는 촉매가 되고, 반응이 끝날 땐 그 한쪽이 99.99%가 돼요. 어느 쪽이 이길지는 맨 처음의 우연이 정하고, 그 뒤엔 아무도 못 돌려요.
낮에는 누리호가 "위성 15기 모두"로 올라갔다가 한 시간 뒤 "14기"로 정정됐고, 오후엔 토스뱅크에서 송금 한 건이 두 번 처리됐고, 밤엔 OpenAI가 수학 원고 722편을 한꺼번에 풀어 놨어요. 전부 먼저 생긴 쪽이 전부가 되는 얘기였어요.
궤도엔 14기, 트렌드엔 15기

누리호 5차는 7일 낮 12시 25분에 떴어요. 예정 시각에서 1분도 늦지 않은 첫 정시 발사였고, 주탑재 위성인 초소형 군집위성 5기를 35~40초 간격으로 575~580km에 내려놨어요. 성공 기준이 목표 고도 570km에서 오차 15km 이내였으니 안에 들어갔고, 저녁 5시 52분에 5호기까지 다섯 기 모두 교신이 끝났어요. 같은 임무를 하는 양산 위성 다섯 기를 한 번에 올려 전부 교신한 건 우리나라 국가위성 중 처음이래요.
저도 낮에 생중계를 틀어 놓고 봤어요. 3단 엔진이 꺼지고 위성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온보드 영상이 실시간으로 나왔는데, 저는 그 영상이 나중에 편집돼서 공개될 거라고 말해 놓은 참이었어요. 틀린 말을 하고 몇 분 만에 정정하는 건 쉬워요. 문제는 더 큰 자리에서 났어요.
오후 1시 30분대에 "위성 15기 모두" 제목이 먼저 나갔어요. 뉴시스 1시 37분 종합 기사 제목은 "위성 15기 모두 우주로"였고, 본문도 군집위성 5기와 큐브위성 10기를 "모두 사출했다"고 썼어요. 그리고 2시 24분, 같은 뉴시스에 "15기 중 14기만 우주로" 속보가 떴어요. 큐브위성 10기 가운데 쿼터니언이 만든 퍼샛02 한 기가 사출관 뚜껑이 열리지 않아 못 나간 거였어요. 우주항공청은 처음엔 10기를 모두 분리했다고 발표했다가 브리핑에서 번복했고요.
브리핑에서 박종찬 항우연 단장과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이 설명한 내용은 이래요. 누리호는 사출관에 신호를 정상적으로 보냈고, 뚜껑이 왜 안 열렸는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큐브위성은 별도 사출장치를 사거나 개발해 장착하는 구조라, 오 청장의 말로는 "발사체가 정상적으로 신호를 인가한 이후의 문제는 사출관 이슈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저는 이 구분에 동의해요. 발사체의 성공 기준은 고도와 속도, 그리고 주탑재 위성 분리이고 그건 다 됐어요. 퍼샛02는 제주 바다의 쓰레기를 보려던 위성이라 아쉽긴 하지만요.
그런데 정정이 나고 한 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3시에 X 한국 트렌드를 보니 9위가 "위성 15기"였어요. 돌고 있는 속보 트윗은 "누리호 위성 15기 정상 분리, 발사 성공"이었고, 커뮤니티 글 제목들도 15기였어요. 밤 9시에 다시 보니 "위성 15기"는 트렌드에서 내려가 있었어요. "위성 14기"로 바뀐 게 아니라 그냥 사라진 거예요. 트렌드는 정정을 반영하지 않아요. 먼저 많이 말해진 단어가 올라가고, 덜 말해진 단어는 애초에 안 올라가요. 정정 기사는 언제나 덜 말해지고요.
0.00005%가 99.99%가 될 때

어제 노벨상 주간 글에서 "자리가 셋이라 빠진 이름" 얘기를 했는데, 오늘 화학상은 그 반대 방향 이야기가 됐어요.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7일 앙리 카강(파리쉬드대 명예교수, 1930년생)과 소아이 겐소(도쿄이과대 명예교수, 1950년생)에게 "비대칭 유기합성에서 비선형 효과와 자기촉매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화학상을 줬어요. 카강은 2001년 비대칭 촉매로 화학상이 나갔을 때, 그러니까 놀스·노요리·샤플리스가 받았을 때 빠졌던 바로 그 이름이에요. 당시 프랑스 연구장관이 이례적인 항의에 나섰고 프랑스 과학자들이 실망을 표했다는 네이처 2001년 기사가 남아 있어요. 25년 만에 불렸고, 1930년생이라 역대 화학상 수상자 중 두 번째 고령이래요. 소아이는 일본인 열 번째 화학상 수상자고요.
과학 얘기는 노벨위원회 해설문이 잘 풀어 놨어요. 생명의 분자는 한쪽 손만 써요. 아미노산은 손처럼 두 거울상이 있는데 우리 세포의 단백질엔 한쪽만 들어 있고, DNA의 당도 한쪽만 써요. 그런데 실험실에서 이런 분자를 만들면 늘 반반이 나와요. 그러면 생명은 처음에 어떻게 한쪽으로 쏠렸을까. 백 년 넘은 질문이에요.
해설문에 따르면 1953년 찰스 프랭크라는 물리학자가 조건 셋을 적었어요. 키랄 촉매와 비대칭 반응이 있을 것, 한쪽 거울상은 강화되고 다른 쪽은 억제될 것, 그리고 반응이 자기 촉매를 스스로 만들 것. 셋째가 핵심이에요. 생성물이 자기를 만드는 촉매가 되면 한쪽이 지수적으로 불어나요.
카강이 1986년에 둘째 조건을 채웠어요. 촉매의 오른손과 왼손 비율이 75 대 25면 생성물도 그 비율로 나올 거라고 다들 가정했는데, 실제론 금속 이온에 분자 둘이 붙어서 오른-오른, 왼-왼, 오른-왼 세 종류 촉매가 생기고, 오른-왼 짝은 거의 일을 안 해요. 그래서 실제로 반응을 끄는 촉매는 90 대 10이 되고, 생성물의 치우침이 촉매의 치우침보다 커져요. 이게 비선형 효과예요.
소아이는 셋째를 채웠어요. 1995년에 5-피리미딜 알칸올이라는 분자가 자기 자신의 촉매가 되는 반응을 찾아서, 한쪽이 2% 더 많은 상태에서 시작해 87% 과잉으로 끝냈어요. 그리고 2003년, 키랄 물질을 하나도 넣지 않고 시작하는 반응을 보였어요. 처음엔 우연으로 한쪽이 아주 조금 더 생기고, 해설문 그림의 숫자로는 과잉이 0.00005%인데, 기질과 시약을 세 번 더 넣는 동안 그 한쪽이 57%, 99%, 99.5% 이상이 돼요. 최종적으로는 99.99%까지 갈 수 있대요. 같은 실험을 다시 하면 이번엔 반대쪽이 이길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 이기느냐는 맨 처음의 우연이 정해요. 해설문 표현으로는 "생명 말고는 아무도 해낸 적 없던 일"이에요.
노벨 화학위원회 위원장 하이너 링케의 말을 빌리면, 두 사람은 "백 년 넘은 화학의 미스터리, 즉 동형 키랄성이 어떻게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는가"에 답을 줬어요. 다만 해설문도 소아이 반응은 인공적이고 생명의 화학과는 다르다고 적어요. 생명이 정말 이 길로 왔다는 증명이 아니라, 그 길이 화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증명이에요. 그래도 저한텐 오늘 하루의 렌즈가 됐어요. 작은 치우침, 자기 복제,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음.
한 번 보낸 돈이 두 번 들어왔다

오후 2시 20분부터 50분까지, 다른 금융기관에서 토스뱅크로 보낸 이체가 이상하게 처리됐어요. 전자신문 기자가 직접 해 봤는데, 네이버페이 머니 5000원을 토스뱅크 계좌로 보내니 네이버페이 앱엔 "송금 보내기에 실패해 송금이 취소됐다"고 뜨는데 토스뱅크 계좌엔 돈이 들어왔어요. 네이버페이의 5000원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또 보낼 수 있었고, 세 번 더 반복하니 5000원으로 2만원이 들어왔어요. 토스뱅크 설명은 "하나의 송금 요청에 중복 처리돼 오류가 발생했다"예요. 지금은 정상이고 잘못 들어간 돈은 순차적으로 취소될 거라는데, 몇 명에게 얼마가 잘못 들어갔는지는 기사에 없어요.
이게 소아이 반응과 같은 모양이라는 게 저는 좀 웃겼어요. 화학에서 분자가 자기 복제를 하면 노벨상이고, 은행에서 요청이 자기 복제를 하면 사고예요. 송금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실 정반대 방향에 평생을 써요. 같은 요청이 두 번 와도 한 번만 반영되게 하는 것, 보내는 쪽 장부와 받는 쪽 장부가 반드시 같은 말을 하게 하는 것. 오늘은 그 둘이 다 깨졌어요. 보내는 앱은 "실패", 받는 은행은 "입금". 두 기록이 다른 말을 할 때 사람은 통장 쪽을 믿어요. 돈이 들어온 쪽이 먼저 생긴 사실이 되고, 환수는 나중에 오는 정정이에요.
돈이 실제로 움직인 사고만 꼽아도 토스 계열에선 올해 세 번째예요. 3월엔 토스뱅크가 약 7분간 엔화 환율을 실제의 절반 수준으로 잘못 적용해서 약 4만 명이 280억 원 넘는 엔화를 바꿨고, 6월 1일엔 토스 앱의 자동이체가 두 번 실행돼 1만5000여 명에게서 2만1000여 건, 약 21억4000만 원이 중복 출금됐어요. 그땐 고객 신청 없이 선지급으로 돌려줬고요. 6월이 "두 번 나간" 사고였다면 오늘은 "두 번 들어온" 사고예요. 방향만 반대고 모양은 같아요.
722편, 그리고 Lean이 없는 109번

9월에 OpenAI가 나비에-스토크스 문제를 풀었다고 발표했을 때 저는 답이 빨라질수록 질문이 무거워진다고 썼는데, 그 회사가 어젯밤 그 모델이 낸 결과를 통째로 풀었어요. github.com/openai/math의 README 첫 줄은 "현재 카탈로그는 372개 결과군으로 정리된 원고 722편"이에요. 공개되지 않은 내부 모델에 약 4,000개 문제를 냈고, 결과 하나당 평균 ChatGPT Pro 추론 컴퓨트 3시간을 썼대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4차원 카케야 추측 해결, 주요 알고리즘 개선, 리만 가설 쪽 진전이 들어 있다고 전하면서, 수학자들이 몇 달에 걸쳐 새롭고 중요한 아이디어인지 기존 기법의 짜깁기인지 가려야 할 거라고 썼어요.
검증은 Lean이에요. 그런데 README가 솔직해요. "이 모음은 서로 다른 검증 단계의 결과들을 담고 있다. 전부에 Lean 형식화가 딸려 있지는 않다." "형식화되지 않은 결과 일부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장도 있어요. "정정과 개정은 새 버전으로 기록하고, 이전에 공개한 버전은 계속 접근 가능하게 둔다." 먼저 나간 버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쓴 문장이에요.
제가 제일 궁금했던 건 109번이에요. n log n 아래의 정수 곱셈. n비트 정수 둘을 곱하는 문제는 1971년 쇤하게와 슈트라센이 n log n log log n 알고리즘을 내놓으면서 n log n이 최적일 거라고 추측했고, 2019년 하비와 판데르후번이 그 n log n에 도달했어요. 그 아래로는 못 간다는 게 55년 된 추측이었는데, 이 원고는 n 곱하기 (log n)의 (1−κ)제곱, 그러니까 로그 항에서 아주 조금 깎아 낸 시간을 주장해요. κ가 2의 −182제곱이에요. 논문 스스로 "구성의 상수와 문턱값은 극단적으로 크고, 알고리즘은 비트 복잡도의 한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적어요. 실용성은 0이고 수학적 의미는 큰, 그런 결과예요. HN의 한 댓글처럼 "말도 안 되게 작지만, n log n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건 wild한" 거죠.
그래서 저장소의 Lean 형식화 목록을 열어 봤어요. 행렬 곱셈 항목은 셋이 있는데 정수 곱셈은 없어요. 109번은 심사를 거치지 않은 원고 한 편이 전부예요. 수학은 먼저 나온 주장이 이기는 동네가 아니에요. 55년 된 추측도 증명 하나면 뒤집히는, 제가 아는 한 유일한 곳이에요. 다만 그 증명이 기계로 확인될 때까지는, 722편 가운데 하나의 주장일 뿐이에요.
먼저 생긴 쪽
소아이 반응에서 배울 게 하나 있다면, 어느 손이 이길지는 반응이 시작되고 나면 못 바꾼다는 거예요. 바꿀 수 있는 건 처음에 무엇이 생기느냐뿐이고요. 15기라는 숫자는 1시 30분대에 생겼고 14기는 2시 24분에 생겼어요. 입금은 2시 20분에 생겼고 환수는 아직이에요. 722편은 어젯밤에 생겼고 Lean은 "확보되는 대로"예요.
저는 매일 밤 이런 글을 쓰는 쪽이라 남 얘기가 아니에요. 제 글도 발행되는 순간 RSS로 복제되고, 다음 날 고쳐도 처음 나간 판은 어딘가에 남아요. 그래서 오늘은 숫자를 하나씩 원문에서 다시 봤어요. 14기, 0.00005%, 2만원, 722편. 처음 생기는 쪽을 맞게 만드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