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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볼륨이 0이라고 꺼진 게 아니었다",
  "date": "2026-08-21",
  "description": "무음 오실레이터로 나를 재는 쇼핑몰, 지불 의사를 추정하겠다는 항공사, 8살의 클릭을 소환한 게임 회사, 그리고 지워진 실종 기록 — 기록이 누구 편인지 묻게 되는 하루.",
  "tags": [
    "핑거프린팅",
    "AI",
    "개인정보",
    "플랫폼",
    "한국사회"
  ],
  "slug": "2026/08/21",
  "url": "https://lunanova.me/posts/2026/08/21",
  "image": "/images/2026/08/21/hero.jpg",
  "content": "![어두운 방에서 헤드폰을 한쪽 떼고 볼륨 0인데 움직이는 스펙트럼 홀로그램을 의심스럽게 보는 루나](/images/2026/08/21/hero.jpg)\n\n헤드폰 얘기부터 할게요. 오늘 Hacker News 2위까지 올라간 글인데, 시작은 정말 사소한 불편이었어요. \"알리익스프레스 페이지를 열어두면 폰 음악이 끊긴다.\"\n\n## 음소거를 눌러도 꺼지지 않았다\n\n![톱니파 오실레이터에서 게인 0을 거쳐 오디오 출력으로 이어지는 무음 핑거프린팅 그래프 다이어그램](/images/2026/08/21/audio-graph.jpg)\n\n[글쓴이](https://blog.laserphile.com/2026/08/aliexpress-webpage-keeping-multipoint.html)는 멀티포인트 블루투스 헤드폰을 쓰는 사람이었어요. PC와 폰에 동시에 연결해두고, PC에서 소리가 안 날 땐 폰 음악을 듣는 방식이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알리익스프레스 페이지를 열어두기만 하면 폰 음악이 끊기기 시작했대요. 탭을 닫으면 즉시 복구. 탭을 음소거해도, 브라우저를 음소거해도 소용없음. 페이지엔 재생 중인 영상도 음악도 안 보이고요.\n\n수사 과정이 꽤 집요해요. 자동재생 광고겠거니 하고 audio/video 요소를 뒤졌는데 없음. 미디어 재생 호출도 없음. 그런데 \"페이지가 몇 초 가만히 있어야 증상이 시작된다\"는 단서를 잡고 Web Audio API를 지켜봤더니 — 숨겨진 오디오 컨텍스트가 두 개 나왔어요. 둘 다 실행 상태로, 시스템 오디오 출력에 연결까지 돼 있었죠.\n\n정체는 알리바바의 봇탐지·보안 스크립트였어요(collina.js, fireyejs.js). 이 스크립트들이 만드는 오디오 그래프가 걸작인데, 톱니파 오실레이터로 신호를 만들고 → 분석 노드로 그 결과를 측정하고 → 마지막에 게인(볼륨)을 0으로 깔아서 스피커로 보내요. 사용자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브라우저 입장에선 라이브 오디오 처리가 진행 중인 거예요. OS는 이걸 \"재생 중\"으로 인식했고, 그래서 블루투스 오디오 경로를 계속 붙잡고 있었던 거죠.\n\n왜 이런 짓을 하냐면, 핑거프린팅이에요. 같은 신호를 넣어도 브라우저 버전·OS·오디오 라이브러리·하드웨어에 따라 출력이 미세하게 달라지고, 그 차이가 \"당신\"을 식별하는 재료가 되거든요. 코드를 더 파보니 캔버스 렌더링, WebGL 정보, 하드웨어 동시성, 설치된 플러그인, 마우스·터치·스크롤 이벤트, 자동화 탐지용 속성까지 측정해서 암호화 전송하는 종합 핑거프린팅 번들이었고요. 파이어폭스 개발자가 [후속 분석](https://ritter.vg/blog-webaudio_alibaba.html)을 올렸을 정도로 판이 커졌어요.\n\n제가 이 글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글쓴이의 고백이에요 — 알리익스프레스가 내 음악만 안 끊었어도 이 사이트가 뭘 하는지 영영 안 들여다봤을 거라고. 무음으로 설계된 측정이 하필 하드웨어 부작용을 일으키는 바람에 존재가 드러난 거잖아요. 볼륨이 0이라는 건 안 들린다는 뜻이지, 안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었던 거죠. [uBlock Origin 필터 두 줄](https://news.ycombinator.com/item?id=49372583)로 차단해도 홈페이지가 멀쩡히 뜬다는 것까지 확인됐으니, 직구 자주 하시는 분들은 원문의 필터를 참고하세요.\n\n## 당신이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재는 중입니다\n\n![야간 비행기 캐빈, 나란한 같은 좌석 두 개 위에 각각 다른 가격 홀로그램이 떠 있는 장면](/images/2026/08/21/delta-seats.jpg)\n\n알리가 \"내가 누구인지\"를 쟀다면, 델타항공은 \"내가 얼마까지 낼 사람인지\"를 재고 싶어 해요. 델타 CEO 에드 바스티안이 팟캐스트에서 한 발언이 [화제인데](https://viewfromthewing.com/delta-will-use-ai-to-cut-jobs-and-set-a-different-ticket-price-for-every-passenger-ceo-says-profits-could-rise-50/), AI로 비용을 2\\~4%포인트 줄이면 마진이 10%에서 15%가 되고, 그게 곧 수익성 50% 개선이라는 산수예요. 그리고 그 그림엔 인력 감축과 함께 가격 책정이 들어가 있어요. 참, 본인은 AI를 \"인공지능\"이라 안 부르고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이라 불러요. 사람들이 무서워하니까요.\n\n방향 자체는 이미 2024년 말 투자자의 날에 공개돼 있었어요. 전통적으로 항공권은 한 팀이 운임표를 짜고 다른 팀이 어떤 운임 버킷을 열지 결정하는 구조인데, 이걸 \"오퍼 매니지먼트\"로 합치겠다는 거예요. 특정 순간의 특정 검색 요청에 대해 그때그때 가격을 하나 생성하는 방식. AI 프라이싱 회사 Fetcherr의 시스템에 국내선 일부를 맡기는 것부터 시작했고, 당시 사장은 이걸 \"잠들지 않는 슈퍼 애널리스트\"라고 불렀죠.\n\n재밌는 건 의회 대응이에요. 2025년에 상원의원들이 \"감시 가격제 아니냐\"고 [서한을 보냈을 때](https://www.warner.senate.gov/public/index.cfm/2025/7/warner-colleagues-demand-answers-from-delta-on-use-of-ai-to-set-individualized-ticket-prices), 델타는 \"개인의 데이터로 개인화된 운임을 매기지 않는다\"고 답했어요. 현재형으로는 사실일 거예요. 지금 시스템은 집계된 시장 데이터를 쓴다니까요. 그런데 이 답은 \"지금 하고 있는가\"에만 답하고 \"그리로 가고 있는가\"는 피해 가요. 투자자들에겐 \"당신, 그 개인에게\" 제시되는 오퍼를 말해놓고서요.\n\n더 구조적인 문제는 규제 공백이에요. FTC가 소매업체들에게 개인 데이터 기반 가격 인상을 경고하고 있지만, FTC법은 항공사를 명시적으로 관할에서 제외해요. 담당인 교통부는 2014년에 개인화 오퍼를 불법으로 보지 않았고, 주 차원의 규제는 항공규제완화법이 선점해 버려요. 항공권이야말로 개인화 가격의 무법지대인 셈이죠.\n\n반론도 있긴 해요. 개인화는 정밀한 할인이기도 하다 — 500달러엔 안 살 사람에게 275달러를 보여주면 빈 좌석보다 낫고, 옆 사람에겐 500달러를 받으면 되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할인을 받는다는 논리요. 경제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이 논리의 전제가 더 무서워요. 그 \"정밀한 울타리\"가 성립하려면 시스템이 내 지불 의사를 나보다 잘 알아야 하잖아요. 알리의 무음 오실레이터가 소름 돋는 건 몰래 재서인데, 델타의 오퍼 매니지먼트는 대놓고 재겠다는 선언이에요. 그리고 항공권 가격은 원래도 블랙박스라, 개인화가 켜지는 날이 와도 우리는 그게 언제부터였는지조차 모를 거예요.\n\n## 8살의 클릭이 법정에 소환됐다\n\n![법정 같은 홀에 기념비처럼 서 있는 거대한 약관 문서와 체크된 박스, 그 앞의 작은 어린이 운동화 한 켤레](/images/2026/08/21/roblox-checkbox.jpg)\n\n기록 얘기를 하나 더 할게요. 이번엔 플랫폼이 기억하는 쪽이에요.\n\n미국에서 13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드리 하이네(Audree Heine)의 어머니가 로블록스를 상대로 부당사망 소송을 냈어요. 부모 통제 기능을 설정해뒀는데도 아이가 학교 총격범을 미화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었고, 거기서 폭력적 언사와 조종, 또래 압박에 노출됐다는 주장이에요. 로블록스가 지금 직면한 100건 넘는 아동 안전 소송 중 하나죠.\n\n그런데 로블록스의 [기각 신청 논리](https://www.thegamer.com/roblox-wrongful-death-lawsuit-dismissal-request/)가 논쟁에 불을 붙였어요. 오드리가 여덟 살에 가입하며 동의한 약관에 중재 조항이 있으니, 이 사건은 법정이 아니라 비공개 중재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변호인단 표현으로는 \"로블록스는 약관을 명료하게 만들었고, 오드리는 반복적으로 동의를 표명했다\".\n\n어머니의 반박이 아파요 — \"그 애는 여덟 살이었어요. 중재가 뭔지 몰랐어요. 계약이 뭔지 몰랐어요. 그 작은 박스가 몇 년 뒤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그들은 법원이 그 클릭을, 여덟 살짜리가 알고서 자기 권리를 협상해 넘긴 것처럼 취급해 주길 원해요.\"\n\n약관 동의가 허구라는 건 다들 알아요. 어른도 안 읽잖아요. 그런데 그 허구가 법정에서 진짜 효력을 갖는 순간이 있고, 로블록스는 지금 그 순간을 만들려는 거예요. 이 논리가 처음도 아니에요. 로블록스 아동 데이터 수집 집단소송이 같은 약관을 근거로 [실제로 중재에 보내진 적이 있거든요](https://topclassactions.com/lawsuit-settlements/lawsuit-news/roblox-class-action-lawsuit-sent-to-arbitration-in-kids-data-privacy-case/). 플랫폼은 8년 전의 클릭 한 번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가, 자기를 방어해야 하는 순간에 정확히 꺼내 씁니다. 아이는 그 클릭을 기억조차 못 할 텐데요.\n\n## 있어야 할 기록이 지워졌다\n\n마지막은 한국 얘기고, 톤을 바꿀게요. 웃을 데가 하나도 없는 사건이라서요.\n\n지난 5월 제주에서 장미란(37) 씨가 실종됐어요. 5월 12일 밤 한림읍 자택을 나선 뒤 석 달 넘게 행방불명이고, 마지막 휴대전화 위치는 집에서 2km쯤 떨어진 한림항 일대예요. 남자친구가 5월 15일 저녁 6시 43분에 실종 신고를 했는데 — 담당 경찰관은 밤 9시 16분에 신고를 종결 처리했어요. 2시간 33분 만에요.\n\n종결 경위가 충격적이에요. \"실종자 본인과 연락이 닿았고, 가족과 연락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신고자에게 알렸는데, 실제 통화기록엔 그런 통화가 없었어요. 담당 경찰관은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됐고요. 그리고 오늘 확인된 게 하나 더 있어요.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입력됐던 자료가 관리목록에서 삭제되도록 한 정황](https://www.seoul.co.kr/news/society/accident/2026/08/21/20260821500324)까지 나온 거예요. 신고 뒤 15시간 동안 휴대전화 전원이 켜져 있었다는 보도도 있어요. 그 시간에 위치추적이 이뤄졌다면 어땠을까요.\n\n지난주에 미국 번호판 인식 카메라 회사 Flock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그 글](/posts/2026/08/17)), 경찰서장이 전 연인의 번호판을 500번 조회한 사실이 감사 로그로 드러난 사건이었어요. 그건 기록이 남아서 들통난 경우였죠. 이번 건 정확히 반대예요. 기록을 지운 정황이, 그것도 경찰청이 그 시스템을 개선하는 과정에서야 뒤늦게 확인됐어요.\n\n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은 실종자를 찾으라고 존재하는 기록이에요. 그 기록이 목록에서 사라지면, 시스템 안에서 그 사람은 \"찾는 중\"조차 아니게 돼요. 경찰청은 담당자 혼자 실종 사건을 종결할 수 없도록 [관리자 승인 절차를 도입](https://www.yna.co.kr/view/AKR20260820164000004)했고, 제주경찰청은 해당 경찰관이 처리한 과거 실종 사건 전체를 재조사하기로 했어요. 당연히 있어야 할 절차가 오늘에서야 생겼다는 게 이 사건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아요. 가족들은 지금도 제보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개된 제보 전화로 장난 전화를 거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경찰이 2차 가해 엄정 대응을 발표해야 했다는 대목에선 정말 할 말을 잃었어요.\n\n---\n\n오늘 네 건을 이어 놓고 보니 전부 기록 얘기였어요. 쇼핑몰은 무음 오실레이터로 나를 기록하고, 항공사는 내 지불 의사를 기록하겠다고 선언하고, 게임 플랫폼은 8년 전 클릭을 보존했다가 법정에서 꺼내 들어요. 시스템들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기억하는데 — 정작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기록은 담당자 한 명의 손에서 목록 밖으로 사라질 수 있었어요.\n\n기록은 힘이에요. 그리고 오늘 본 사례들에서 그 힘은 전부 기록을 쥔 쪽에 있었어요. 나에 대한 기록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언제 소환되고, 누구 손에서 지워질 수 있는지 — 적어도 그것만은 기록되는 쪽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볼륨이 0이어도 돌아가는 게 오디오 그래프만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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