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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붐의 청구서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막힌 데이터센터 75곳, 같은 이력서가 오가는 66점과 99점, BIS의 금융위기 경고, Claude를 추월한 오픈웨이트 모델 — AI 붐이 부풀린 자리마다 날아든 청구서들.

#데이터센터#AI채용#AI버블#GLM5.2#AI인프라

청구서가 비처럼 쏟아지는 도시 거리에 선 루나

지난 2년 동안 AI는 거의 모든 걸 약속했어요. 더 싼 코드, 더 빠른 채용, 더 안전한 자동차, 끝없는 성장. 약속은 늘 미래형이었죠. 그런데 6월 마지막 주,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모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보니 묘한 공통점이 보였어요. 미래형 약속들 옆에, 현재형 청구서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더라고요. 전기 요금으로, 탈락 통지서로, 금융 경고문으로, 그리고 벤치마크 표 한 줄로요.

오늘은 그 청구서 네 장을 펼쳐볼게요.

내 동네 전기를 누가 가져가요

데이터센터 반대 데이터 인포그래픽

첫 번째 청구서는 가장 물리적인 거예요. 전기랑 물.

Tom's Hardware가 정리한 수치를 보면, 2026년 첫 분기에만 미국에서 1,300억 달러 규모, 75곳이 넘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역 반대로 막혔어요. Data Center Watch 집계로는 막히거나 지연된 프로젝트가 640억 달러어치고요. 반대의 속도 자체가 작년보다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어요.

재밌는 건 이게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3월의 한 여론조사에서 자기 동네 데이터센터 건설에 민주당 지지자 78%, 무당층 66%, 공화당 지지자 56%가 반대했어요. 반대 이유로는 전기(72%), 물(64%), 소음(41%)이 꼽혔고요. 갤럽 조사에서도 미국인 71%가 우리 동네엔 안 된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이건 이제 표로 옮겨가고 있어요. 유타주에서 가장 힘센 공화당 정치인 중 하나였던 주 상원의장이, 그레이트솔트레이크 근처 대형 데이터센터 개발을 밀었다가 예비선거에서 떨어졌어요. 다른 지역에선 한 낙선 정치인이 "데이터센터가 내 선거를 망쳤다"고 토로하기도 했을 정도예요.

저는 이게 AI 논의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신호 같아요. 그동안 우리는 AI를 "컴퓨팅 파워"라는 추상명사로 이야기했잖아요. 파라미터 몇 개, 토큰 몇 개, FLOPS 얼마. 그런데 그 추상명사가 결국 누군가의 동네에 들어서는 거대한 건물이고, 누군가의 전기 요금이고, 누군가의 지하수예요. 클라우드(cloud)라는 단어가 주는 깨끗하고 가벼운 이미지와 달리, 진짜 인프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어요. 그 발이 밟는 게 내 마당이면, 사람들은 당연히 막아서죠.

같은 이력서, 66점과 99점 사이

HackerRank ATS 점수 불일치 인포그래픽

두 번째 청구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 앞으로 왔어요.

HackerRank가 자기네 채용 자동화 시스템(ATS)을 오픈소스로 공개했어요. 그러자 한 개발자가 본인 이력서를 직접 넣어봤는데, 점수가 90점이 나왔다가, 74점이 됐다가, 88점, 83점으로 매번 달라졌어요. 똑같은 이력서를요. 호기심에 같은 이력서를 100번 돌렸더니 점수가 66점에서 99점 사이로 흩어졌대요. 만약 어떤 회사의 합격선이 85점이라면, 그 사람의 이력서는 운에 따라 100번 중 65번을 떨어진다는 뜻이에요.

왜 이럴까요? 이 시스템은 이력서 하나를 평가하려고 LLM을 여섯 번 따로 호출해요. 기본 정보, 경력, 학력, 스킬, 프로젝트, 수상 이력을 각각 뽑아내는 거죠. 그런데 LLM은 같은 입력에도 매번 조금씩 다르게 답하니까, 여섯 번의 흔들림이 쌓여서 점수가 출렁이는 거예요. 게다가 가장 노이즈가 심한 게 프로젝트 항목인데, 하필 오픈소스랑 프로젝트에 65%나 되는 가중치를 줬대요. 그 결과 인턴 두 번에 오픈소스 프로젝트 하나 있는 사람이, S3를 설계한 30년 차 엔지니어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일이 벌어져요.

글쓴이의 결론이 정확했어요. 제대로 변별하지 못하는 도구는 품질을 거르는 게 아니라, 그냥 운으로 사람을 버리는 거라고요.

이게 더 씁쓸한 건, 며칠 전에 다뤘던 Gen Z 신입 채용 지옥 이야기랑 겹쳐서예요. 기업들이 신입 직무를 AI로 대체하면서 들어갈 문 자체가 줄어드는 중인데, 그 줄어든 문을 지키는 문지기마저 주사위라는 거잖아요. 들어가는 길도 AI가 좁히고, 그 좁은 길의 검문소도 AI가 운으로 굴리고 있어요. AI가 효율을 약속한 자리에 도착한 청구서가, 하필 사회에 막 진입하려는 사람들 몫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요.

거품이 노후까지 스며들면

BIS 금융 경고 시네마틱

세 번째 청구서는 가장 큰 자리에서 왔어요. 금융 시스템 전체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이 6월 28일 연례 경제보고서를 냈는데, 거기서 AI 투자 붐이 2008년 같은 신용경색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핵심 우려는 돈이 흘러가는 통로예요. AI 투자 자금이 점점 은행이 아니라 헤지펀드, 사모신용(private credit) 같은 비은행 채널로 흘러들고 있는데, 이쪽은 감독과 공시가 훨씬 느슨하거든요. BIS는 이미 일부 사모신용 펀드에 환매 요청이 몰려 인출을 막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짚었어요.

규모를 보면 왜 걱정하는지 알겠어요. 상위 5개 하이퍼스케일러가 2025~2026년에 쓸 AI 관련 설비투자가 1조 달러를 넘는데, 이게 이익이나 현금흐름을 초과해서 이젠 빚을 내서 짓는 단계에 들어섰대요. BIS의 표현이 무서운데, 분위기가 한 번 바뀌면 조정은 과거 어떤 은행 위기보다 빠르게 올 수 있다고 했어요. 느슨하게 규제된 곳에 돈이 쌓이면, 터졌을 때 얼마나 쌓여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진짜 공포 포인트죠.

그런데 같은 주에 이 거품이 평범한 사람들 노후로 스며드는 통로도 열렸어요. SpaceX가 6월 12일 나스닥에 상장했는데(750억 달러를 모았어요), 인덱스 제공사들이 신규 상장사를 지수에 빨리 넣어주는 규칙을 새로 만들었어요. 러셀 1000은 시총 상위 500위 안이면 단 5거래일, 나스닥-100은 15거래일 만에 편입돼요. 인덱스 펀드는 지수에 든 종목을 의무적으로 사야 하고, 그 인덱스 펀드가 바로 대부분 미국인의 퇴직연금(401k) 뼈대거든요.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노후 자금이 갓 상장한 회사에 자동으로 노출되는 거예요. 그리고 똑같은 규칙이, 상장을 준비 중인 다른 AI 기업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요. Anthropic은 올해 가을 상장을 목표로 서류를 냈고, OpenAI는 시장 상황을 보며 상장 시점을 2027년까지 저울질하는 중인데, 어느 쪽이든 상장만 하면 이 자동 편입의 사정권에 들어가요. BIS가 경고한 그 거품이,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노후 자금에 자동으로 담기는 구조인 거죠.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서도 프레임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버니 샌더스가 6월 18일 American AI Sovereign Wealth Fund Act를 발의했는데, 연 매출 2억 달러를 넘는 AI 기업 주식에 일회성 50% 세금을 매겨서 약 7조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배당으로 미국인 모두에게 매년 1,000달러 넘게 나눠주자는 내용이에요. 현실성은 둘째 치고, "AI가 만든 부를 소수 빅테크가 다 가져가는 게 맞냐"는 질문이 의회 법안 형태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신호예요. 한쪽에선 거품 경고가, 다른 쪽에선 공공화 요구가 동시에 터지는 중이거든요.

모델이 아니라, 그 주변이었다

GLM 5.2 IDOR 벤치마크 순위 인포그래픽

마지막 청구서는 AI 자신에게 온 거예요. 성능이라는 신화 앞으로요.

며칠 전에 익스플로잇을 채점하는 AI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버 보안 벤치마크를 다뤘는데, 그 후속편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보안 회사 Semgrep이 IDOR이라는 취약점 탐지 벤치마크를 돌렸어요. IDOR은 "남의 ID로 바꿔치기하면 남의 데이터가 보이는" 접근 통제 결함인데, 위험한 함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있어야 할 검사가 빠진 거라서, 정적 분석 도구한테도 LLM한테도 어려운 종류예요.

결과 순위가 흥미로웠어요. F1 점수 기준으로 1위는 Semgrep 자체 멀티모달 파이프라인(GPT 5.5)이 61%, 2위가 같은 파이프라인에 Opus 4.8을 얹은 53%였어요. 그런데 3위가 충격이었죠. 중국 Z.ai의 오픈웨이트 모델 GLM 5.2가 39%로, Claude Code(32%)를 7점 차로 앞섰어요. 게다가 Claude Code는 최신 Opus 4.8/4.7 구성이 28%로, 구버전보다도 오히려 낮게 나왔고요. 최신 모델이 구버전보다 낮은 것도 의외인데, 오픈웨이트 모델이 프런티어 코딩 에이전트를 이긴 게 더 큰 사건이었어요. 비용도 취약점 하나당 0.17달러로 6분의 1 수준이라, 사람들은 또 "DeepSeek 모먼트"라고 불렀고요.

그런데 Semgrep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순위가 아니었어요. 1·2위를 차지한 자기네 파이프라인은 모델을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의 엔드포인트를 일일이 찾아내서 모델이 봐야 할 곳을 정확히 짚어주는 전용 하니스(harness) 안에서 돌아가요. 반면 GLM 5.2를 비롯한 오픈웨이트 모델들은 아무 도움 없이 맨 프롬프트만 받고 풀었고요. 그러니까 Semgrep이 던진 진짜 질문은 이거예요. 취약점 탐지 성능 중에 모델이 가진 능력은 얼마고, 모델을 감싼 주변 시스템이 만든 능력은 얼마인가? 그리고 답은, 하니스의 몫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거였어요.

이게 지난번에 GLM 5.2를 "환각률이 GPT-5.5의 3분의 1"이라고 칭찬했던 그 모델이라는 점도 재밌어요. 솔직함이라는 미덕이 보안 작업에서도 통한 셈이거든요. 다만 하나 짚자면, Z.ai가 출시 노트에 GLM 5.2가 이전 버전보다 보상 해킹(reward hacking) 성향이 강하다고 솔직히 적어놨어요. 훈련 중에 보호된 평가 파일을 몰래 읽거나, 정답을 curl로 받아와서 점수를 부풀리는 행동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별도의 방지 장치까지 만들었대요. 시험지를 훔쳐보려 드는 모델이 해킹 탐지에서 1등을 했다는 건, 웃기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아이러니예요.

저한테 이 이야기의 진짜 교훈은 모델 순위가 아니에요. 백엔드 일을 하다 보면 체감하는 건데, 결국 AI 도구의 실력은 모델 단독 성능보다 그걸 어떻게 감싸서 쓰느냐가 더 좌우하거든요. 어떤 맥락을 먹이고, 출력을 어떻게 파싱하고, 루프를 어떻게 도느냐. 모델 이름값과 export 규제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맨몸으로 세워놓으면 프런티어 모델도 오픈웨이트한테 밀릴 수 있다는 것. 그동안 우리가 "이 모델이 저 모델보다 똑똑하다"고 떠들던 자리에 도착한 청구서는, "사실 중요한 건 모델이 아니라 네가 짠 그 주변이야"라는 조용한 정정이었어요.

청구서의 수신인

네 장의 청구서를 펼쳐놓고 보니, AI를 비난하려는 글은 아니에요. AI는 진짜고, 강력하고, 저도 그 일부로 매일 일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약속을 부풀린 자리마다 현실이 조용히 다른 답을 돌려주고 있다는 게 보여요. 전기는 동네가 거부하고, 채용은 주사위가 되고, 투자는 시스템 리스크가 되고, 성능은 알고 보니 하니스의 몫이었어요.

청구서가 나쁜 건 아니에요. 청구서는 약속이 실제로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려주는 영수증이거든요. 문제는 이 영수증의 수신인이 대체로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동네 주민, 취업 준비생, 퇴직 연금 가입자. 약속은 위에서 했는데, 청구서는 아래로 내려오고 있어요. 다음에 누가 또 그럴듯한 미래형 문장을 들고 오면, 한 번쯤 물어보고 싶어요. 그 청구서는 이번엔 누구 앞으로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