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3안타와 22점, 그리고 동의 없이 박힌 공저자

최형우의 KBO 신기록부터 VS Code의 Copilot 메타데이터 강제 삽입까지, 일요일에 모인 네 가지 숫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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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일요일 저녁, 거실 창가에서 노트북과 야구 중계를 동시에 보는 루나

비가 조용히 내리다 그친 일요일이에요. 황금연휴 첫 일요일이라 인터넷도 마트도 야구장도 다 시끌벅적했는데, 그 와중에 오늘은 묘하게 숫자가 인상적인 하루였어요. 2,623안타, 22점, 1,223점, 그리고 75%. 다 다른 영역에서 나온 숫자인데 하나씩 풀어볼게요.

동의 없이 박힌 "Co-authored-by: Copilot"

git log 화면에 강조 표시된 Co-authored-by Copilot 트레일러 클로즈업

오늘 Hacker News 상단에 1,223점으로 떠 있는 글이 있어요. VS Code 리포지토리의 PR #310226인데요, 어제까지 683점이었던 게 24시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어요. 개발자들이 진짜 화났다는 뜻이에요.

뭐가 문제냐면, VS Code의 Git 확장이 4월 29일 배포된 1.118 버전부터 git.addAICoAuthor 설정 기본값을 "off"에서 "chatAndAgent"로 바꾸면서, Chat/Agent 기능을 거친 작업의 커밋에 Co-authored-by: Copilot 트레일러를 자동으로 박기 시작한 거예요. 사용자 동의도 없고, 설정으로 끄는 건 가능하긴 한데...

진짜 심각한 건 그 다음이에요. chat.disableAIFeatures: true로 AI 기능을 명시적으로 꺼둔 사용자들의 커밋에도 Copilot 공저자가 박혔어요. AI 한 줄도 안 쓴 수동 커밋에까지요. PR 코멘트에 누군가 이렇게 적었어요. "I have disableAIFeatures set to true and co-authored by copilot still gets inserted. This is absolutely unacceptable."

이게 단순한 표시 문제가 아닌 이유는, 커밋 메타데이터가 코드의 법적 소유권과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오픈소스 라이선스, 저작권 귀속, DCO(Developer Certificate of Origin) 같은 게 다 커밋 트레일러를 근거로 작동하거든요. 사용자가 작성한 코드에 멋대로 "AI가 공저자"라고 박아버리면, 그 코드의 라이선스 상태부터 애매해질 수 있어요. AGPL 같은 카피레프트 라이선스 프로젝트라면 더 골치 아프고요.

추측하기 좋은 동기도 있어요. "우리 사용자의 N%가 Copilot으로 코딩합니다" 같은 지표를 만들기에 이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죠. 동의 없이 메타데이터에 박아넣으면 통계는 뻥튀기되고, 커뮤니티 라이선스는 오염되고, Microsoft 내부 보고서는 예뻐지고. Microsoft 담당자는 다음 1.119 업데이트에서 기본값을 다시 "off"로 되돌리겠다고 밝혔고, 같은 담당자가 직접 되돌리기 PR(#313931)도 올렸어요. 그래도 "왜 이게 머지됐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아요.

저는 이 사건이 AI 시대의 메타데이터 윤리 라는 새 카테고리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코드는 안 건드렸지만 그 코드를 누가 썼다고 말할 권리는 빼앗긴 거예요. 데이터 소유권 논쟁이 이제 "내 글로 AI를 학습시키지 마" 에서 "내가 AI 안 써도 AI가 썼다고 박지 마" 로 한 단계 옮겨간 셈이죠.

22점, 7승, 그리고 오픈웨이트의 도발

Word Gem Puzzle 격자 위에서 슬라이딩 타일을 움직이는 추상적 일러스트

중국 Moonshot AI의 오픈웨이트 모델 Kimi K2.6이 Word Gem Puzzle이라는 코딩 챌린지에서 22점으로 10개 모델 중 1위를 차지했어요. 같은 챌린지 결과를 정리하면:

  • 1위 Kimi K2.6 — 22점
  • 3위 GPT-5.5 — 16점
  • 5위 Claude Opus 4.7 — 12점
  • 6위 Gemini Pro 3.1 — 9점

Word Gem Puzzle은 10×10에서 30×30까지 크기가 다른 격자에 알파벳 타일과 빈칸 하나가 있고, 봇이 타일을 슬라이드해서 가로/세로로 단어를 만드는 게임이에요. 짧은 단어는 점수를 깎고 긴 단어는 보너스. AI가 "공간 추론 + 어휘 + 다단계 계획" 을 동시에 해야 해서 흔한 코딩 벤치마크와 결이 다르죠.

물론 한 챌린지 결과로 "Kimi가 Claude보다 강하다" 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더 종합적인 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에서는 여전히 GPT-5.5(60) > Claude(57) > Kimi(54) 순서거든요. 격차가 좁혀진 것뿐이지 역전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진짜 포인트는 "오픈웨이트" 라는 점이에요. Kimi는 누구나 다운로드해서 자기 GPU에서 돌릴 수 있어요. GPT-5.5나 Claude Opus 4.7은 OpenAI/Anthropic의 클라우드를 거쳐야만 쓸 수 있고요. "4점 차이밖에 안 나는 모델을 무료로 내 서버에서 돌릴 수 있다" 는 건 기업 입장에서 게임 체인저예요. 데이터를 외부로 보내고 싶지 않은 금융권/의료/공공이 "이 정도면 충분히 쓸 만하네" 라고 판단하는 임계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중국이 Kimi, DeepSeek, Qwen 같은 오픈웨이트 라인업으로 "API 매출은 미국이 먹어라, 우린 인프라를 점령하겠다" 전략을 노골적으로 펼치는 게 보여요. 미국이 "칩 수출 규제로 중국 AI 묶기" 를 시도하는 동안 중국은 "풀린 가중치로 글로벌 표준 점령" 으로 응수하고 있는 거고요.

"지금 사는 사람이 몇 명이냐"가 가격을 정하는 시대의 끝

식료품점 가격표가 사람마다 다른 숫자로 보이는 추상 이미지

메릴랜드주가 미국 최초로 식료품점의 AI 동적 가격 책정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어요. 이름은 Protection from Predatory Pricing Act(HB 895). 웨스 무어 주지사가 4월 28일 서명했고, 2026년 10월 1일 시행 이에요.

핵심은 간단해요. 마트가 "이 손님은 부유한 동네 거주자고, 휴대폰은 아이폰이고, 지난주에 와인을 두 번 샀으니 이번 주 와인 가격은 10% 올려도 되겠지" 같은 개인 데이터 기반 가격 차별을 못 한다는 거예요. 같은 날 같은 마트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선반에 적힌 같은 가격을 봐야 해요.

적용 범위는:

  • 1만 5천 평방피트(약 420평) 이상 대형 식료품점
  • 제3자 배달 플랫폼
  • 면세 식품 품목 한정
  • 할인/로열티 프로그램/일반 프로모션은 예외

"개인화된 가격(personalized pricing)" 또는 "감시 가격(surveillance pricing)" 은 미국에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퍼지진 않았는데, FTC가 2024년에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미 일부 대형 마트가 실험 중" 이라는 보고가 나왔거든요. 메릴랜드는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에 막자" 는 선제적 입법인 셈이죠.

근데 Consumer Reports는 통과 직후 약간 시큰둥한 입장을 냈어요. 기준 가격(reference price)을 의무화하지 않은 점, 로열티/멤버십 프로그램과 구독 서비스가 예외로 빠진 점, 특정 소비자 세그먼트별 차별이 여전히 가능한 점 등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는 비판이에요. 거기에 적용 범위 자체도 "면세 식품 + 15,000평방피트 이상 대형 매장" 으로 좁혀진 상태고요. 그래도 "동적 가격을 법으로 금지할 수 있다" 는 선례 자체는 강력해요. 다른 주들이 따라할 가능성이 크고요.

한국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배달앱 서지요금이 이미 익숙한 풍경이잖아요. "비 오는 토요일 저녁에 치킨 시키면 2천 원 더" 같은 거. 오프라인 마트에서도 전자 가격표(ESL)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이 바뀌는 마트" 가 가능해진 상태예요. 메릴랜드법이 "같은 가격을 봐야 한다" 는 건 막지만 "매시간 가격이 변하는 것 자체" 는 막지 않거든요. 진짜 다음 라운드는 "개인별" 이 아니라 "시간별/시점별" 가격 차별을 어떻게 다룰지일 것 같아요.

2,623 — 42살이 20년을 들고 다닌 기록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의 9회말 끝내기 홈런 직후 환호하는 그라운드 시네마틱 컷

마지막은 가벼운 야구 이야기로 마무리할게요. 오늘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시즌 가장 극적인 경기가 나왔어요. 9회말 4-6으로 지고 있던 삼성이 르윈 디아즈의 끝내기 스리런으로 7-6 역전승. 한화 마무리 잭 쿠싱의 스위퍼를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타구.

근데 이 경기에서 진짜 역사적인 순간은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나왔어요. 삼성의 최형우(42세) 가 안타를 치면서 KBO 통산 2,623안타 로 손아섭(2,622안타)을 제치고 단독 1위 에 올랐어요. 그 안타가 무사 1·2루를 만들었고, 곧이어 디아즈가 끝내기를 친 거예요.

최형우가 이 자리까지 오른 과정이 좀 묘해요. 작년(2025년) 5월에 박용택(2,504안타)을 넘어 단독 2위가 됐고, 1년 만에 손아섭까지 추월하면서 단독 1위에 올랐어요. 1년 사이에 역대 2위와 1위 자리를 연이어 꿰찼다는 게 이상하리만치 꾸준한 선수라는 뜻이죠. 전성기가 길다는 게 어떤 건지 이 기록 하나로 다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디아즈 끝내기에 묻혀버린 신기록" 이라는 농담도 나오는데, 사실 한 경기에 두 사건이 다 일어났다는 게 더 영화 같아요. 같은 그라운드, 같은 9회말, 같은 팀의 두 타자. 한쪽은 "42세가 누적해온 20년", 다른 쪽은 "한 스윙의 폭발". 야구가 왜 그렇게 다양한 시간 척도로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보여주는 9회말이었어요.


오늘 모인 네 숫자를 다시 보면 묘하게 다 "누가 무엇을 셀 권리를 가지는가" 에 대한 이야기예요. 커밋 메타데이터로 "AI 사용량" 을 세려는 Microsoft, 벤치마크 점수로 "누가 더 강한가" 를 다투는 AI 회사들, 개인 데이터로 "이 손님은 얼마까지 낼까" 를 계산하던 마트, 그리고 16년 동안 "한 타석" 을 차곡차곡 세온 한 선수까지요.

세는 주체가 누구냐, 누구의 동의로 세느냐, 어떤 시간 척도로 세느냐. 24시간 만에 두 배가 된 분노 점수와 20여 년에 걸쳐 쌓인 안타 숫자가 같은 일요일에 나란히 떨어진 게 일요일 저녁에 다시 보니까 묘하게 어울려요.